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1953 - )
현성
Sep 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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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태생의 지휘자.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 ‘현존하는 최고의 지휘자’라 평가받는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1953년 5월 2일,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이후,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의 카푸카스 산맥으로 둘러 싸인 북 오세티아 공화국의 수도 블라디캅카즈(Vladikavkaz)로 이주하여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일찍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1972년 레닌그라드 음악원에 입학하여 당시 러시아 지휘의 전설이었던 일리야 무신(Ilya Musin)에게서 지휘를 배웠다.
러시아의 지휘자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지휘자가 바로 모든 러시아 출신 지휘자들의 스승인 ‘일리야 무신’이다.
당시 그는 상트 페테르부르크(구, 레닌그라드) 음악원의 교수이자 지휘자였으며,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예프게니 므라빈스키(Yevgeny Mravinsky)와 함께 쌍벽을 이뤘던 지휘계의 전설이었다.
므라빈스키가 레닌그라드 필을 이끌고 연주활동으로 명성을 얻었다면, 무신은 레닌그라드 음악원에서의 교육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유리 테미르카노프(Yuri Temirkanov ), 루돌프 바르샤이(Rudolf Barshai), 세묜 비치코프(Semyon Bychkov), 그리고 발레리 게르기예프 등은 세계 최고의 지휘자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므라빈스키를 잇는 러시아 지휘자들은 수도 없이 많은데, 그의 적자이자 라이벌이 바로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마리스 얀손스(Mariss Jansons)이다.
이 두 지휘자는 모두 레닌그라드 음악원에서 각기 다른 스승 밑에서 공부했지만, 카라얀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게르기예프는 레닌그라드 음악원에 재학중이던 1976년 '소련 지휘자 콩쿨'에서 1위, 1977년 '카라얀 지휘 콩쿨'에서 2위에 입상하면서 카라얀으로부터 지휘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1977년, 레닌그라드 음악원을 졸업한 게르기예프는 유리 테미르카노프가 상임으로 있던 키로프 오페라 극장의 보조지휘자로 들어갔고, 이곳에서 프로코피에프의 오페라 <전쟁과 평화, War and Peace>를 지휘하면서 지휘자로서 데뷔하였다.
1981년 아르메니아 국립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로 발탁되어, 1982년부터 1985년까지 영국 리치필드 축제(Lichfield Festival)에서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Vadim Repin), 막심 벤게로프(Maxim Vengerov)와 함께 연주했다.
1988년, 키로프 오페라단의 수석지휘자가 된 게르기예프는 구소련의 붕괴 이후 침체된 마린스키 극장을 부활시키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소련 붕괴의 혼란기에 처하여 게르기예프의 극장 경영은 극히 곤란했지만, 국제적인 지원을 받아 러시아의 고전 오페라에 새로운 연출법을 소개했다.
또한 올가 보로디나(Olga Borodina)와 갈리나 고르차코바(Galina Gorchakova), 안나 네트렙코(Anna Netrebko) 같은 유명한 성악가 등 많은 신인 가수들을 발굴하는 데에도 성공하고, 마린스키 극장을 세계적인 지위로 끌어 올렸다.
그는 ‘오직 러시아에 의한, 러시아를 위한 극장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러시아 작곡가들의 음악을 통해 부활의 돌파구를 찾은 그는 차이콥스키의 <마제파>와 글린카의 <루슬란과 루드밀라>, 보로딘의 <이고르 공>,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 등 러시아 오페라들을 공격적으로 무대에 올렸다.
또한, 므라빈스키가 과거 레닌그라드 필과 그랬던 것처럼,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며 러시아 레퍼토리를 ‘가장 러시아적으로’ 소개했으며, 말러의 <교향곡>이나 베르디, 바그너의 <오페라>까지도 포함시켰다.
게르기예프의 이런 노력 덕분에 마린스키 극장은 재기에 성공했고, 극장 부활의 일등 공신인 게르기예프에게는 '러시아 음악의 차르'라는 별명도 붙여졌다.
1991년, 키로프 극장은 전속 오페라단 및 발레단과 함께 황제의 이름을 따서 마린스키 극장으로 명칭을 바꾸었고, 1996년에 게르기예프는 마린스키 극장의 예술 감독으로 취임했으며 재임 기간에 극장의 지위를 세계 최고의 오페라 극장 가운데 하나로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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